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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병자호란' 당시 저항도 못해보고 항복한 이유

똥베이런 2018.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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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은 임진왜란 종전 이후 1636년 12월 28일에 발발한 혼란으로 비극적인 역사 중 하나입니다. 또한 병자호란은 공식적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신하국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한데요. 조선이 '병자호란' 당시 저항도 못해보고 항복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병자호란'이 발생하게 된 것은 '인조반정'이후 광해군이 펼쳤던 후금(청나라)과 명나라 간의 중립외교가 아닌 '친명정책'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직전 청나라는 조선에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의 중립외교를 중지하고 조선의 입장을 확실히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조선은 '친명정책'을 펼쳤고 청나라 홍타이지가 명나라를 완벽하게 공격하기 전 후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공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청나라 기마병이 조선에 침략하자 북방의 전선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청나라 정예기마병들은 곧바로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대신들은 '인조'에게 강화도(남한산성)로 피신해야한다고 직언을 했고 '인조'는 강화도(남한산성)로 피신하게 되었는데요.



실제 국내 역사학자들은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게 저항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항복한 이유를 2가지로 들고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병자호란 직전 일어난 '이괄의 난' 그리고 두번째로는 청나라의 침입에 대한 '방어준비'의 부족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이괄의 난'은 규모가 상당했고 이괄군의 반란을 막다가 사망한 전투 경험이 많은 고위장군들의 공백이 너무나 컸다고 하는데요.



방어전선의 준비부족과 고위장군들의 공백이라는 것으로 인해 조선군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전투 경험이 부족한 대신들에 의해 조선군은 청나라군을 막을 수 없었고 청나라군에 의해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을 포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한산성이 청나라군에 의해 포위되자 조선 조정은 궁지에 몰렸고 식량을 비롯한 식수까지도 공급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겪으며 저항했지만 조선군은 청나라군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해보고 항복을 하게 되는데요.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최대한 빨리 사신을 보내 거짓외교라도 했다면 수 만명의 조선 백성들이 끌려가거나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인데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인조'가 현명한 군주였다면 무고한 조선 백성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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