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초로 3만 명의 주민이 봉기한 '해주시 학살사건'
1976년에 발생한 해주시 학살사건은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꽤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북한 최초로 3만 명의 북한 주민이 봉기한 '해주시 학살사건'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76년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는 김일성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하여 대규모 인민봉기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1976년 기준 황해남도 해주시의 인구는 대략 27만 명으로 3만 명의 해주시 주민들이 봉기했다고 하는데요.
해주시에서 주민들이 봉기한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북한 당국은 4개 여단급 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했고 해주시에서 봉기한 주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진압 과정에서 4개 여단급 규모의 특수부대들은 폭동에 가담한 가담자 뿐만 아니라 폭동에 참여하지 않은 죄 없는 마을 주민들까지 학살했다고 합니다. 진압결과 해주시에 투입 된 특수부대들은 죄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대략 3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해주시 근처에 있는 개성시 주민들까지 폭도들에게 선동 당했다고 김일성은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김일성의 판단은 개성시 주민들까지 '정치범수용소'에 보낸 뒤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사건 이후 해주시와 개성시에는 충섬심이 강한 평양시 주민들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이주시켜 도시를 완전히 물갈이해버렸다고 합니다.
1976년에 일어난 '해주시 학살사건'은 실패한 봉기지만 북한에서 일어난 봉기사건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만약 당시 3만 명이나 되는 주민들에게 무기가 있었다면 내부 봉기는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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