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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

똥베이런 2017.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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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국제연합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상륙작전으로 한국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전쟁입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은 전 세계에서도 유명한 상륙작전으로 손꼽히기도 하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한국전쟁 준비를 도운 중국의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상륙작전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초대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주은래)' 역시도 한국전쟁 발발 이후 한반도에 탐색을 지시하여 '인천상륙'을 예측했다고 합니다.



또한 '저우언라이'는 한반도 탐색 이후 중국 공산당 전략회의에서 '국제연합군이 상륙한다면 인천으로 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저우언라이'는 '김일성'에게 '인천을 조심하라'라는 전문을 보냈으나 김일성은 이를 무시해버리는데요.



당시 김일성은 빨치산 중대장 출신으로 백명 미만을 지휘한 경험 밖에 없었고 소련 육군 장교출신인 김일성이 상륙작전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일성은 1950년 9월 공세에 병력이 부족하자 경기도 전선에 있는 병력까지 차출시켜 9월 공세에 동원했는데요.



이로 인해 인천상륙작전 당시 인천을 방어하는 병력은 인천 월미도에 주둔하고 잇는 해군 육전대 2개 중대 규모와 인천 시가지를 지키는 2개 대대 병력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도 인천 앞바다에 소련 해군의 도움을 받아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지만 부설 시점이 너무 늦어 조기에 발각되어 모두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즉,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김일성이 중국의 충고를 무시하고 멍청한 판단을 했기 때문인데요. 만약 김일성이 전략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지 못한 작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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