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최초의 총격사건 '마쓰작 판문점 망명사건'
얼마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를 통해 북한군 병사가 귀순을 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를 통해 귀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판문점 최초의 총격사건 '마쓰작 판문점 망명사건'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84년 11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경 당시 소련 관광안내원이었던 '바실리 마투조크'는 남북 군사정전위원회 회담 장면을 찍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실리 마투조크'라는 소련인은 계획대로 혼란한 틈을 타 건물 사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남을 하기 위해 남측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는데요.
이 망명 요청을 받은 유엔군과 한국군 경비 병력들은 '바실리 마투조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자 그를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 육군 병력들은 '바실리 마투조크'의 월남을 막고자 권총을 발사하며 그를 저지했는데요. 하지만 북한군 병사들은 그의 월남을 막지 못했고 결국 17명의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150m까지 침범했고 30분 간 총격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끈질긴 총격에도 불구하고 '바실리 마투조크'는 무사히 월남했고 이 총격전으로 인해 카투사 '장명기 일병'과 미 육군 병사 1명이 전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총격전에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북한군 병사 2명 사망, 2명 부상설과 3명 전사, 5명 병사 설이 있다고 합니다. 즉, 이 총격전으로 인해 북한 병사들은 큰 피해를 받게 된 것인데요.
이 총격전으로 인해 북한군 병력들은 피해가 커지자 총격전을 중단하고 부상자, 사상자를 수습해 돌아가겠다고 교전 중단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요청을 국군과 미군측이 받아들이면서 판문점 최초의 총격전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UN측은 총격전 이후 북한을 배려하여 군사분계선에 있는 사망자와 중상자들을 모두 후송해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사실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도 사상자 규모로만 보면 판문점 최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잊혀진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판문점에서 소련인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인데요. 소련인 하나 때문에 같은 민족 간에 총격전을 벌였다니 참 슬픈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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