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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로 정벌전쟁을 한 세종대왕의 정복사업 2가지

똥베이런 201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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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이라는 한글을 만든 위대한 군주로써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명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세종대왕 즉위시절 조선은 정복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고 하는데요. 이외로 정벌전쟁을 한 세종대왕의 정복사업 2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4군 6진


4군 6진은 세종대왕 즉위시절인 1433년부터 1437년까지 조선은 영토를 확고히하고자 진행 된 예방전쟁이라고 합니다. 4군 6진이라는 단어는 1433년 최윤덕 장군이 조선군 1만 5천명을 이끌고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을 소탕한 후 설치한 4군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또한 같은 해 조선의 김종서 장군과 이징옥, 황보인 등과 함께 함경도 지방의 여진족을 물리쳐 두만강 유역에 설치한 6진을 합쳐 4군 6진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집권시기 4군 6진을 개척한 것은 고려 멸망 이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은 사실 상 주인이 없는 영토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조선은 4군 6진을 개척하여 완벽한 조선의 영토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하는데요.



4군 6진 개척은 현재 한반도 영토를 확고히한 정복사업으로 개척 이후 압록강-두만강 이남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의 북방 국경선을 거의 확립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한국사에 큰 의미가 있는 정복사업이라고 합니다.



대마도 정벌


세종대왕 즉위 1년 1419년에 진행 된 '대마도 정벌'은 한국사에서 보면 제3차 대마도 정벌에 속한다고 합니다. 제1차 대마도 정벌은 1389년 고려 창왕 2년, 제2차 대마도 정벌은 1396년 조선 태조 5년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세종대왕 즉위 1년 1419년 당시 조선이 대마도 정벌을 계획한 것은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대마도 거주인들이 크게 들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마도인들은 명나라 해안가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동 도중 조선의 해안 지역을 약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안 조선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돌아오는 왜구를 중간에서 치는 방법과 쓰시마 섬 본거지를 치는 두가지 방법을 논의했다고 하는데요. 논의 결과 쓰시마(대마도) 본거지를 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조선은 병력을 동원하여 쓰시마를 침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세종 즉위 1년 당시에는 상왕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군권을 가지고 있어 군사에 관한 결정을 직접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을 보고받은 태종 역시 대마도 정벌을 승인하면서 대마도 정벌에 대한 계획이 승인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조선군은 대마도에 상륙했고 조선군을 막지 못한 대마도주는 조선에 항복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대마도주는 항복 당시 조선에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면서 조선 해안가를 약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정벌로 인해 오랜 기간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대마도는 한 동안 조선의 통치권에 있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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