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왕조실록6 조선왕조실록을 본 현대 역사학자들이 깜짝 놀란 이유 최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던 괴물이 프랑스에서 목격되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는 '조선시대 역사서에 기록된 괴물이 부산에서 목격되었다'라는 글이 올라왔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당시 사실만을 기록한 문서로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던 현대 역사학자들도 깜짝 놀라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조선 중종 시기 어느 날 새벽 철통같이 지키던 궁에 무언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궁궐 수비를 하던 병사들은 당시 이상함을 느끼고 살펴보았다고 하는데요. 언뜻 보았을 때 검은 개처럼 보이는데 시커먼 몸뚱아리에 희끄무레한 얼굴이 꼭 인간의 얼굴을 닮았다고 합니다. 소름끼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줄행랑을 쳤고 이 괴물을 놓쳤다가는 왕의 목숨이 위험했다고 합니다. .. 실시간 이슈 2022. 2. 15. 더보기 ›› 명량해전 당시 일본측의 피해규모는? 명량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 12척으로 일본 수군의 대규모 함대를 막아 낸 전설적인 전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량해전 당시 조선측 피해규모와 일본측 피해규모가 불확실하다고 하는데요. 명량해전 당시 일본측 피해 규모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 1598년 2월 11일 자 기록에는 진해에 사는 정병 전풍상이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후 도망쳐 와서 한 이야기 한 것을 토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풍상이라는 정병은 왜적에게 붙잡혀 포로로 한 달 정도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조선 조정에 그대로 말했다고 하는데요. 전풍상은 포로로 잡힌 후 일본군에서 복역하면서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왜적이 함선 120척을 거느리고 순천, 흥양을 거쳐 .. 밀리터리 2017. 10. 24. 더보기 ›› 한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 6권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은 한민족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왕조실록, 징비록과 같은 신빙성 있는 역사서들을 포함하여 야사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이끌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1592년 ~ 1598년)까지 야전에서 쓴 일기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는 충청남도 현충사에 비치되어 있으며 현재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경험한.. 밀리터리 2017. 5. 31. 더보기 ››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1592년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벌한다는 목적의 정명가도를 조선에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였는데요.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일본은 대마도를 거쳐 부산에 상륙하여 동래성을 함락하면서 곧장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진군했습니다. 이에 조선 조정은 당대 조선 최강의 장수라고 불리는 신립을 필두로 하여 일본군을 막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신립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왜군에게 대패하여 일본군이 수도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습니다. 결국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백성들과 한양을 버리고 몽진을 결정했습니다. 선조의 몽진을 알게 된 조선 백성들은 더 이상 .. 밀리터리 2017. 5. 1. 더보기 ›› 우리가 잘 모르는 태종 이방원의 일화 5가지 안녕하세요.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왕권을 차지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세종대왕의 업적의 기틀을 만든 군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시절에 집권했던 태종 이방원의 일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태종 이방원의 일화 5가지 심술쟁이 국왕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한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역사학자들은 태종 이방원의 성리학 수준은 신하들과 비등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신하들을 말장난으로 꼬투리를 잡거나 했다고 하네요. 사냥애호가 태종 이방원은 사냥을 상당히 즐겼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즉위하고 난 뒤 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고 싶어 세종을 꼬드겼다고 합니.. 밀리터리 2017. 2. 14.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