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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최영 장군의 이야기 5가지

똥베이런 2017.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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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영 장군은 여말선초 당시 고려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인데요. 하지만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폐위되면서 유배를 가게 되었고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최영 장군을 존경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현대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최영 장군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최영 장군의 이야기 5가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대체적으로 역사교과서에는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 라는 명언을 최영 장군이 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명언은 최영 장군이 한게 아닌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한 것이라고 합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라는 말을 지침으로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순수한 군인에 가까운 인물


대체적으로 최영 장군은 고려말 권문세족 중 한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최영 장군은 권문세족이기 전에 이성계와도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군인이기 전에 부패한 권문세족을 척결하는데 있어서 최선봉에서 앞장섰다고 하네요.



부하들과 백성들에게 엄격한 인물


최영 장군은 아무리 아끼는 부하라고 해도 군령을 어기면 바로 척결했다고 합니다. 물론 백성들에게 곡식을 징발하는 부분에 있어서 좋게 평가하고 있지 않은 주장이 있는데요. 최영의 조카사위가 살인죄를 저질렀을 당시에도 친척임을 감안하여 죄를 삭감해주려고 하자 법대로 하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려 말기 충신 끝판왕


최영 장군은 이성계와 정적대립을 형성하였고 우왕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면서 충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요. 고려사를 살펴보면 최영 장군은 고려 우왕의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조선시대에 최영 장군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도 있기는 했지만 세종대왕이 옹호한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위와 장인의 의리 때문에 충정을 지켰을 수도 있었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전략적 명장


대체적으로 고려의 장군들은 돌격형 무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최영 장군은 흥산대첩 당시에도 전략적 전술을 펼치거나 게릴라 전을 펼치면서 적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특히 전장에서는 창에 찔리거나 칼에 베이는 등 병사들과 함께 최선봉에서 돌격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올렸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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