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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여담 5가지

똥베이런 2017.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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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인민해방군의 공식명칭은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한국에서는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중국 공산당의 군대라는 이름의 중공군으로 표현해왔습니다. 현재 중국 정규군은 중국군 또는 인민해방군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군에 한정하여 중공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첫번째 여담


김일성과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는 매우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합니다. 중공군 참전 이후 서울을 점령했던 중공군이 UN군의 공세와 본토로부터의 보급 차질때문에 펑더화이는 서울에서 철수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철수 내용을 안 김일성이 펑더화이의 사령부까지 찾아와 주먹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펑더화이는 김일성보다 13살 위였다고 한다.



두번째 여담


중공군은 보급 차질문제 외에도 의료지원도 열악한 상태에서 많은 병력들을 질병으로 잃었다고 합니다. 특히 유행성 출혈열은 중공군 내에서 돌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공산진영에서는 유엔군이 세균전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군도 이런 질병으로 잃은 병력이 상당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무산되었고 유행성 출혈열은 원래 한국의 풍토병이라고 합니다.



세번째 여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에 소속되어 있는 병력들 중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한 조선족들이 지원군에 상당 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 노인들 중에는 중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네번째 여담


한국전쟁 이후 중공군 사상자 수에 대한 한국측 발표 자료와 중국측 발표 자료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한국과 중국측 전쟁 기록을 보면 패배를 했어도 "비록 물러섰지만,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다시 반격에 나서 상당부분 회복했다는 식의 정신승리적인 기술이 많이 눈에 띈다고 합니다. 그나마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작성한 전사자 통계가 가장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적어도 미군은 사망자 수를 비롯한 기록은 객관적으로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다섯번째 여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중공군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중공군 병력 대부분이 중국 국공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베테랑 병사들이라는 주장인데요. 특히 베티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3개 대대 병력이 당시 국군 1개 소대 35명을 뚫지 못한 것과 중공군 2개 사단을 19명이 물리친 캐나다인 리오 메이져의 전과는 재평가를 부정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만약 중공군이 재평가 받는 것과 같이 국공내전에 참전한 베테랑 최정예 병사들이었다면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에 대한 주장이 너무 많이 때문에 어떤부분이 정확하다고 설명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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