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일제를 끌어들인 갑신정변의 주역들

똥베이런 2016.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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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갑신년에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가 조선의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으로, 그러나 외세 일본을 끌어들였고, 폭력적인 정적 숙청에 비해 허무하게 실패하여 임오군란에 이어 2년만 에 반란을 일으켜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두번째 정변이라고 볼 수 있다



박영효(1861년 ~ 1939년)


갑신정변 이후 골수 친일파가 되었고 갑오개혁 중 2차 김홍집 내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의 의도로 귀국하였고 다시 정부에 복권되어 정부에서 일하다가 고종을 몰아내려는 반란음모를 꾸미다가 걸려서 다시 일본으로 망명한다 이후 고종이 싫어하는 인물 순위권에 꼽히게 되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해서 독립협회에서도 박정양, 윤치호와 더불어 세력이 강했으며 박영효 대통령 음모설까지 나왔다고 한다 독립협회 주도로 개설된 중추원의 첫 의제였던 대신 추천에서도 한 자리했는데 경술국치 이후에는 후작 작위를 받는 등 부유한 친일파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서광범(1859년 ~ 1897년)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으나 일본의 냉대와 조선의 냉대로 인하여 미국에 회의를 갖게 되면서 박영호, 서재필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미국에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학위와 시민권을 취득하고 미국 연방 하급관료로 일하였으며 갑오개혁으로 잠시 귀국하여 김홍집 내각에서 사법개혁을 맡았으나 을미사변 이후 친일파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주한미국공사로 파견되었지만 아관파천으로 정권이 붕괴되면서 파직되었고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서재필(1864년 ~ 1951년)


갑신정변으로 동생 일가와 집안이 멸문하고 겨우 도망쳐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나중에 독립협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미국인 필립 제이슨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인교포들을 위한 지원도 자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광복 이후 귀국시점에선 한국어도 다 잊어버릴 정도로 미국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김옥균(1851년 ~ 1894년)


조선 말 개혁파의 수장격이며 일본이 개방하여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고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한 인물 물론 당시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기 위해서 대담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일부 존재하기는 하지만 김옥균의 단점은 일본을 너무 믿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갑신년에 정변을 일으키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렸다는 것이나 김옥균의 유지를 이어받은 독립협회에서 친일적인 인사가 나온 점이나 백성의 지지 없이 그들만의 개혁 때문에 여러가지로 한계를 가진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로 현대 한국에서는 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여도 이상한 인물은 아니지만 일본에게 이용을 당한 인물이라는 점에 있어서 매국을 한게 아니기 때문에 친일파로 부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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