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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한국전쟁 전투 9가지

똥베이런 201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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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의 냉전기를 대표하는 전쟁 중 하나인 한국전쟁은 세계대전급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어르신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는 한국전쟁 당시 전투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춘천 지구방어 전투


한국전쟁 발발 초기 6월 25일부터 30일 사이 국군 6사단이 강원도 춘천에서 홍천방면으로 남하하던 북한 인민군 제2군단의 공세를 저지한 전투입니다. 춘천 방어선 전투는 국군 6사단은 북한군의 폭풍작전을 실패하게 만든 전투로 어르신들은 춘천 지구방어 전투 덕에 미군과 낙동강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


국군 1사단이 미군과 함께 북한군의 공격을 낙동강 전선에서 방어하면서 한국군의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전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국군과 미군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였다고 합니다.



인천상륙작전


미군 병력과 국제연합 정규군이 한국 인천에 상륙하는 작전으로 인천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은 서울을 점령하면서 전쟁 판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인천상륙 직전에 상당한 열세에 있었던 국군과 미군이 압록강 주변까지 반격 할 수 있게 된 상륙작전인데요.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어르신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작전이라고 합니다.



장진호 전투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중공군이 실질적으로 맞붙은 전투로 현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미 해병 제1사단이 함흥/흥남항 방면으로 철수한 사건입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연합군과 국군이 후퇴하면서 흥남 부두에서 대규모 시민들이 남쪽으로 피난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어르신들은 장진호 전투 당시 중공군을 기억하게 되면 흥남부두가 기억나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횡성 전투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흑 역사 중 하나로 횡성전투는 1951년 2월에 펼쳐진 중공군 3차 공세에서 한국군 제8보병사단이 중공군 13병단의 공격에 궤멸당한 전투라고 합니다. 횡성 전투 인해 중공군의 사기가 올라갔으며 횡성전투로 인해 중공군은 국군과 연합군을 상대로 지속적인 공세를 펼쳤다고 합니다.



현리 전투


현리 전투는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 3군단이 중공군의 춘계 공세로 인해 붕괴하면서 후퇴하였다고 합니다. 현리 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국군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전투라고 볼 수 있습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어르신들에게 현리 전투는 뼈아픈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용문산 전투


용문산 전투는 한국 전쟁 당시 국군의 전투력을 중공군에게 재대로 보여준 전투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용문산 전투는 국군 6사단이 경기도 가평군 방어선인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했던 전투라고 합니다.



백마고지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역사 상 단일기간으로 포탄을 가장 많은 쏟아부었던 전투라고 합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서 일어난 전투 중에서도 유일하게 한국군에게 패배하였다는 걸 인정한 전투라고 합니다.



금성전투


금성전투는 한국전쟁 휴전협정협상의 막바지에 국군과 중공군이 강원도 금성군 일대에서 벌인 전투라고 합니다. 금성전투로 인해 현재의 휴전선이 형성되었으며 금성전투에서 국군의 사망자는 14,300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중공군의 사망자는 66,000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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