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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300의 천재가 자신의 능력을 알바에 사용한 진짜 이유

똥베이런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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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보다 아이큐가 더 높았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천재가 있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89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는 아이큐가 300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의 아이큐를 훨씬 넘는 기록이라고 하는데요.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는 아이큐 300에 가까운 만큼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뉴욕 타임즈를 읽이 시작헀다고 합니다.

실제 2살 때는 라틴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했고 4살 때는 의학 교수들도 어려워한다는 해부학 논문을 직접 집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6살에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를 습득했다고 합니다.

실제 시디스는 11살에 세계 최고의 명문대인 '하버드'에 입학을 했는데 8살 때 MIT와 하버드 의대 입학 시험에 동시에 합격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 당했다고 합니다. 시디스가 하버드에 입학 했을 때 전 세계 언론들은 역대급 천재가 나왔다며 대서특필을 하기 시작했고 신문 1면에 내는 등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디스는 학교 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는데 학교 내에서 시디스를 질투하는 사람들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시디스는 하버드에 입학한 후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17살 때 최연소 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교수들한테까지 질투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시디스는 주변인들의 조롱과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하버드 교수직을 사퇴한 후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 시디스는 이름을 바꿔가면서 지역을 옳겨 다니며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다고 합니다.

하버드 교수직을 사퇴하고 시간이 흐른 1924년 뉴욕의 언론사의 한 기자는 월스트리트 사무실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시디스를 찾아냈고 시디스는 월급 10만원 정도를 받으며 금고의 지폐를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시디스의 횡보에 대해 기사가 나왔는데 입 소문이 얼마나 빠르던지 미국의 언론사들은 '천재의 몰락'이라는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고 합니다. 

실제 시디스는 자신을 조롱하는 언론사들을 상대로 '개인정보침해' 라는 명목으로 고소를 진행했고 7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시디스가 패소했다고 합니다. 시디스가 패소한 이유는 시디스는 너무 유명인이고 공인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고소를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디스는 은둔 생활을 지속하다가 46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고 미국의 언론들은 당시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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