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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무쌍찍은 전설의 영웅들

똥베이런 201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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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사에서 압도적인 전과를 이루어낸 군인들을 칭하는 말로 수 많은 전쟁에서 탄생한 영웅들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좋은 전적을 올릴 수 있도록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한 사령관들에게도 쓰곤 한다


한국 역사에서 무쌍찍은 전설의 영웅들



척준경 (? ~ 1144년)

(소드마스터 척)


고려의 여진정벌 당시에 궁지에 몰린 고려군을 결사대만으로도 2만의 여진족을 몰아냈고 웅주성에는 수 만명의 여진족이 공격해오자 척준경이 병사의 옷을 입고 성벽을 타고 내려와 여진족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정주로 들어가서 병력을 재정비하고 길주에 상륙해 여진족을 격파하였다고 한다



척준경의 무쌍 기록은 야사가 아니라 엄연한 고려의 공식 역사서인 고려사고려사절요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당시 여진족이 제일 무서워했던 장수이면서 결과적으로 요약하자면 리얼 무쌍난무, 1인 전략병기, 소드마스터라고 볼 수 있는데 마지막에 하필 이자겸의 라인을 탄 것이 문제가되서 반역자가 된 것 무력으로는 최강이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부족했다는 것이 현대의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강이식 (550년 ~ ?)

(고구려 요동성 성주 / 고구려 대장군)


고구려 영양왕 재위시절의 장수이자 진주 강씨의 시조로 알려져있다 강이식 장군은 고구려 요동성의 성주와 고구려 대장군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고구려-수나라 전쟁 직전에 수문제가 조공을 바치고 신하국이 되라는 국서를 보내자 이런 싸가지없는 놈들에게는 칼로 대화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 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특히 강이식 장군은 고구려 군부의 젊은 장수들로 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SBS 역사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을 할 때 을지문덕, 고건무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명장이라며 부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지만 수나라의 맹장들이 전부다 일기토로 없어져버렸다 추가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에 강이식 장군이 죽고 난 뒤였으니 연개소문도 존경하는 희대의 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유금필 (? ~ 941년)

(고려의 개국공신, 태조왕권의 와일드 카드)


일단 유금필 장군은 고려 개국공신이자 왕건의 최종병기같은 인물로 정사기록은 아니지만 야사기록에는 923년을 시점으로 북방의 북번이 자꾸 쳐들어와 위협을 가하자 왕건이 유금필을 북방경계로 보내게 되는데 유금필이 북번의 추장 300명을 불러 성대한 술 파티를 연 뒤 이들이 취하자 이제 그만 까불어라? 라고 위협하며 단번에 복종시켰고 북번의 각 촌락마다 사람을 보내서 너희 추장들이 다 복종했으니 이제 그만 까불고 니들도 숙여라 라고 하자 1,500명이 항복했고 포로로 잡힌 고려인 3,000명을 귀환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유금필의 무쌍스토리는 930년에 후백제와 고려의 운명을 가른 고창전투에서는 유금필 장군 혼자서 후백제군으로 돌격하면서 무쌍을 찍자 고려군이 힘을 다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추가로 야사기록에는 서경개척 당시에 마상쌍검으로 서경성문을 단독으로 돌파했다고 한다 



이성계 (1335년 ~ 1408년 )

(조선의 건국자, 고려 말 무쌍찍은 고려의 영웅)


매우 혼란스러웠던 고려 말에 고려 반란군,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 멸망한 원나라의 군벌, 왜구, 심심하면 침입했던 여진족에 이르기까지 당대 동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엇던 적들은 모조리 수 만명씩 박살을 내버린 고려의 명장이자 최영과 더불어 고려의 수호신이라는 별칭이 생겼던 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성계는 활을 상당히 잘 쏘아서 신궁 이라고 하였고 또한 이성계는 30년 동안 전투에 참전하면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근데 이성계의 경우에는 세력이 엄청났다고 하는데 동만주 북방의 여진족들에게 영향을 행사했는데 후대에 청태조인 누르하치의 6대조인 아이신기오로 먼터무도 이성계의 부하였을 정도라고 한다



정기룡(1562년 ~ 1622년)

(조선의 조자룡, 조선 최고의 장수 4인 중 한명)


임진왜란에서 무쌍찍은 장수로 조선왕족실록이라는 조선의 정사를 보면 명나라 장수 마귀는 이순신, 정기룡, 한명련, 권율을 조선에서 제일의 장수로 꼽았고 정기룡 장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당시에 30대의 젊은 장수였다고 한다 



정기룡 장군의 이력을 보자면 거창에서 기병 수십명만 이끌고 왜군 500명을 격파하고 금산전투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하면서 조자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용인 전투에서도 단신으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소규모 일본군과 마주치자 혼자서 일본군을 공격해 모두 없애버린 것 조선왕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 선조실록에 나오는 정사의 비중이 적다보니 정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정확한 것은 임진왜란에서 무쌍찍은 장군이라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홍범도 (1868년 ~ 1943년 )

(독립군 사령관, 전설의 스나이퍼)


독립운동가이자 의병활동을 한 독립군 지휘관 사실 홍범도 장군은 대체적으로 지휘관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인데 홍범도 장군은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에서 산포수 생활을 했고 1895년 을미의병 발생까지 10년 동안 사냥꾼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포수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총잡이였다고 한다



을미의병 당시에 홍범도 장군과 함께 했던 의병은 14명이라고 전해지는데 대부분이 함께 사냥 일을 하던 조합원들이었고 당시에는 전설의 스나이퍼였다는 것이다 야사로는 동료들을 먼저 돌아가라고 해놓고는 홀로 일본군 수십 명을 쏴 죽이고 돌아왔다고 한다 일본군들이 홍범도 장군을 상당히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일본 헌병대와 일본 육군 정규부대를 상대로 약 37회의 전투를 벌였다고 알려져있다



김상옥 (1890년 ~ 1923년)

(실존했던 각시탈, 한국 역사상 최고의 총잡이)


역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김상옥 의사의 일대기가 영화화 되지 않는 것이 미스테리라고 할 만큼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잡이라는 평가가 있는 인물로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멤버라고 볼 수 있다 김상옥 의사의 일대기는 1923년 1월 23일 밤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본 헌병대와 일본 경찰들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는데 1923년 1월 22일 새벽에 최후 은신처가 일본 경찰에게 노출이되었고 전설이 시작이 되었다



1923년 1월 22일 5시쯤 일본 경찰이 무장경관과 기마대 400명을 데리고 김상옥 의사의 은신처를 포위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시가지 무쌍이 시작되기 시작하는데 담벼락을 넘어넘어 권총 2자루로 3시간 반 동안 일본 경찰과 총격적을 벌였고 탄환이 다 떨어지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자결, 순국하였다 이후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였는데 총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하며 자결한 총알 1발을 제외하면 10발의 총알을 맞은 것이 되고 김상옥 의사의 진짜 목적은 사이토 총독을 서울역에서 암살하는 것이었는데 종로경찰서에 왜 폭탄을 던졌는지 의문 점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혼자서 일본 경찰 1,000명을 상대로 독립무쌍을 찍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안중근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

(역사를 바꾼사나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는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연마한 것으로 유명하고 사격 솜씨는 상당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화승총을 쏘아 20보나 되는 곳에 놓인 동전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도 안중근을 안씨 집안의 총 잘쏘는 청년 으로 묘사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을 당시 총 7발을 쏘았다고 하는데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 주변 일본측 인물들에게 4발을 저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저격한 3발은 모두 흉부에 저격이 되었는데 모두 적중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무쌍찍은 인물임과 동시에 역사를 바꾸어버린 위대한 독립운동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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