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일본에서 보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3대대첩

똥베이런 2016.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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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3대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이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이 전투들을 잘 모른다 모쿠소 한간(진주목사 김시민) 때문에 진주성 전투가 좀 유명한 정도이며 행주산성 전투는 조선 내에서 일본군 주요 다이묘들이 초호화 드림팀을 구성해서 10:1이라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공격했다가 대패한 전투이지만 역시 모른다고 볼 수 있으며 17세기 경에 <징비록>이 일본에 유입될 때까지 일본인들은 행주산성전투에서 일본군이 이긴 것이 명나라 군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조선정벌기> 같은 당시 일본책에서는 이 전투를 안남성 전투라고 부르며 털옷을 입은 이국적인 병사들이 산 위에서 내려와 일본군을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본 내 주요장수들이 출전했던 진주성 전투, 행주산성 전투와는 달리 한산도해전은 일본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장수들만 출전한 전투라 더 더욱 듣보잡 전투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일본 입장에서 보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3대대첩



벽제관 전투 (1593년 1월 27일)


임진왜란기에 있었던 전투로 벽제관전투의 일본군 지휘관은 개성의 6군 선봉장인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였으며 명사 신종실록에서는 이 전투를 승전이라고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명군의 패전이 맞다고 보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기록인 태합기에서는 평양과 개성이 빼앗기기는 했지만 명나라 10만 군대를 적은 병력으로 격파했다고 기록했으며 벽제관전투로 인하여 명군의 사기는 저하되었고 명나라 군대는 패배 이후에 그대로 평양성까지 도망간 전투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전투이기는 하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울산성전투와 사천전투와는 다르게 완전 듣보잡 전투이고 일본에서 역사 매니아가 아닌 이상 도저히 모를만한 전투라고 한다.



제1차 울산성 전투 (1597년 12월 23일 ~ 1598년 1월 4일)


임진왜란 후반기, 정유재란 중에 일어난 전투로 일본군의 지휘관은 가토 기요마사였으며 총 두차례인 1,2차로 구분되며 그 중 유명한 것이 제1차 울산성 전투이다 사실 울산성 전투는 명백한 조-명연합군의 패배가 분명한 전투인데 일본군은 비록 이겼지만 조-명 연합군에게 느낀 위협은 매우 심각했다고 한다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관으로 있는 일본군 주둔지역인 울산성을 공격한 조-명연합군의 총병력은 3만9천명이었으며 울산성을 수성한 일본군 병력에 대해서는 불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반기에 일본군도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본병사들이 처절하게 싸운전투 이기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적은병력으로 조-명연합군을 막아낸 전투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사천성전투 (1598년 9월 19일 ~ 10월 1일)


정확하게 말해서 시마즈 요시히로라는 일본군 장수가 사천에 있는 신성에 본진을 두고 일본군 1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켰으며 대체적으로 사천성전투 당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병력은 약 7천명에서 1만명까지 보고 있다. 사천성 전투는 조-명 연합군이 사천성을 점령하고 10월 1일에 사천 신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전투도중에 가와카미 다다노리가 세토구치 시게하루에게 명령하여 적의 식량창고를 불태워버렸으며 지뢰를 묻는 등 조-명연합군의 공격을 잘 방어했으며 게다가 명나라 진영에서 화포가 오발하여 폭팔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명군은 우왕자왕하다가 일본군의 총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식량까지 부족해지자 진주방면으로 철군 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자면 조선의 큰 패배는 용인전투와 칠천량 해전이 아닐까 싶은데 듣도 보지도 못한 전투 3개를 일본에서 일본군 3대대첩이라고 한 것은 3대 대첩의 지휘관이 일본 내에서 유명한 다이묘였다는 점과 조선과 일본의 전투가 아니라 명나라와 일본군 간의 전투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벽제관 전투의 경우에는 일본군이 평양성에서 패배하여 몰리다가 일본군이 한방에 전세를 뒤집은 중요한 전투였으며 울산성 전투와 사천전투의 경우 명나라가 패배하였기는 하지만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쌀이 떨어지고 병사들도 본국으로 돌아가야하는게 간절했기때문에 처절하게 싸운 전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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