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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원 때문에 발칵된 북한 6군단 쿠데타사건

똥베이런 201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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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군단 쿠데타 사건은 북한에서 발생한 몇 안되는 반란 시도로 알려져 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95년에 함경북도 청진시 나남구역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의 제6군단 정치위원(소장계급)이 정권 전복을 기도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쿠데타 계획은 북한이 군사쿠데타 음모사건이라고 국내에 공개를 하게 되면 북한사회에 일으킨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6군단 쿠데타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외화벌이와 관련 된 비리사건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사건정황



사건 당시 북한 6군단은 함경북도 지역을 방어하는 향토군단으로 청진시 라남구역에 사령부를 둔 중국 접경지대의 수비군이었습니다. 북한 6군단 휘하에는 보병 3개사단과 포병 1개사단 그리고 방사포 4개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1995년 초반에 나남구역 안전보위부 라성동을 담당하는 한 요원이 자기가 운영하던 여성정보원으로부터 한 건의 정보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이 정보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민군 중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제를 뒤엎기로 결심했다라는 것이었는데요. 



자료를 접수한 나남구역 안전보위부장은 이 사실을 함경북도 안전보위부 부장에게 보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 뒤 안전보위부 부장의 지시로 함경북도 안전보위부 반탐정처 처장에게 현지로 가서 그 여성정보원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함경북도 안전보위부 반탐정처 처장은 안전보위부장에게 그 여성정보원의 말의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를 해버렸다고 합니다. 여성 정보원의 정보는 허위사실로 묻혀가고 있었으며 그렇게 6군단의 쿠데타 준비는 철저하게 준비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보를 제공한 여성정보원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데 반탐정처 처장이 허위보고를 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여성정보원은 이 정보를 사회보위부가 아닌 군대 보위부에 보고하기로 결심하였는데요. 여성정보원은 평양으로 넘어가 지인들에게 인민군 보위국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이 정보를 들은 당시 인민국 보위국 국장이었던 원응희는 즉시 수사팀을 파견해서 조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조사결과 6군단 정치 위원과 군단의 포병부 사령관들을 포함하여 6군단 내부에서 정변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군관들은 군수물자 보장을 위한 외화벌이를 명목으로 많은 자금을 마련했고 준비가 되면 정변을 일으키려고 했다고 합니다. 



6군단 쿠데타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빙자 비리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군단 교체이동과 군관 대부분을 전역시킨 것을 보면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사건 이후 1996년 2월 함경북도 당 위원회 조직비서는 인민군 6군단 정치 위원과 평소 자주 접촉하고 교류해 온 것이 걸렸다고 합니다. 



결국 함경북도 당 위원회 조직비서는 평양에 소환되어 인민군 보위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뒤 처형되었는데요. 이 때 당 위원회 조직비서는 안전보위부장과 보위부장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증언하여 안전보위부장과 보위부장도 처형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적발한 원응희 인민국 보위국 국장은 중장에서 대장으로 고속승진 되었습니다. 또한 보위국은 사령부로 승격되었으며 1996년 7월에 인민군 6군단의 많은 군관들을 제대시키고 난 뒤 병력들을 분산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또 다른 6군단 사건이 발생 할 것을 우려하여 주요 군부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만약 6군단 사건이 성공했다면 현재와 같은 최악의 한반도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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