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일어났던 폭동 및 쿠데타 5가지사건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통치하게 된 김일성을 시작으로 현재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은 시대까지 북한에서는 5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일어났던 쿠데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주폭동 (1976년)
19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김일성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하여 북한의 대규모 인민이 봉기를 하게 되었으며 이에 북한의 김일성정부는 협상이고 뭐고 즉시 인민군 4개여단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폭동 가담자뿐만 아니라 죄없는 마을주민까지 합하여 대략 3만명을 무차별하게 학살한다. 황해도 해주지방의 인구가 27만명인것을 감안하여 보았을때 3만명이라는 인원이 사망했다면 큰 규모로 폭동이 일어났다는것을 감안 할 수 있으며 북한의 김일성은 무차별 학살에 그치지 않고 해주지방과 근처에 있던 도시인 개성주민들까지 폭도들에게 선동당했다고 판단하였는지 주민 전원을 정치범수용소에 보낸 뒤 죽을 때 까지 강제노동을 하게 만들었다.
온성정치범수용소 폭동 (1987년 5월)
1987년 5월에 온성정치범수용소에서 어느정치범이 노역을 하고 있던도중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수용소간부가 정치범을 구타하기 시작하였고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정치범은 수용소간부를 역으로 폭행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200여명 가량되는 죄수들까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수용소간부를 죽을때까지 폭행한다. 이후 정치범수용소의 정치범들은 열의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간부들의 사저까지 쳐들어가서 간부들을 죽였으며 이 과정에서 다른 죄수들이 선동당하고 합세하게되어 폭동규모는 5천명을 넘기게 되었으며 주변에 정치범수용소에 주둔하고 잇는 인민군의 일부를 급파하여 고사포와 기관총 등을 이용하여 폭동에 가담하지 않은 죄수들까지 모두 학살하게 된다. 만약 이들이 경비원들을 모두 사살하고 무기를 탈취해서 북한군과 교전을 했다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을것이며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렸을 것이다.
황해제철소 시위 (1998년)
1998년은 북한이 겪은시기 중에서도 가장 고단하고 힘들었을때인데 이 당시의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하여 수십만명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강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제철소의 작업의경우에는 많은 식량이 필요했는데 당시 상황으로는 식량추가배분이 불가능했고 이에 제철소 간부들은 몰래 중국에 압연 철판을 팔아버리고 그 댓가로 옥수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얼마못가서 이러한 사실이 김정일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이에 북한은 한국의 국정원이 황해제철소를 가동하지 못하도록 간부들돠 모의하였다고 판단하고 간부들과 주변사람 몇 명을 노동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한다. 다음날 상관의 죽음을 보다못한 황해제철소 노동자들은 일은 멈추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북한은 기갑부대와 기관총 등을 동원하여 수천명을 학살하고 추가적으로 죄없는 인근주민까지 사살한다.
프론제 군사쿠데타 모의사건(1992년)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의 프룬제 군사대학을 나온 북한군인들이 모의한 쿠데타 사건이다. 소비에트 연방도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이지만 고르바쵸프의 집권으로 자유도가 많이 상승했으며 경제상황도 북한보다 훨씬 좋았다.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이들은 소련과 중국의 개혁개방을 보면서 북한 또한 이런게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위해 김일성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다름아닌 군사퍼레이드에 동원되는 전차를 이용해 김일성을 대포로 날려버리는 것인데 소련의 KGB가 실수로 정보를 흘려서 실패하게 되고 쿠데타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되고 친러파들은 북한정부로부터 멸시를 받게 된다. 그 순간부터 1998년까지 5년간에 걸쳐 '프룬제 명칭' 군사아카데미 유학생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으며 인민무력부 총정치국과 총참모부는 물론이고 각 군단,사단,여단의 모든 소련유학생 출신들이 모두 조사를 받았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 김학산 중장과 부무관이었던 최수연 대좌도 체포되었다. '프룬제 명칭' 군사아카데미의 쿠데타 모의가 실패한 후 그 공로르르 인정받은 인민무력부 보위국은 인민 보위사령부로 승격되었으며 보위국장이었던 원흥희는 보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격하게 된다. 이사건으로 30명의 장령과 100명의 좌급군관 70명의 위급군관 등 도합 200명의 소련 군사아카데미 유학생 출신들이 총살되었으며 살아남은 일부 유학생들은 군복을 벗은채 지금도 북한 당국의 감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사건' 이후 북한은 외국에 군사유학생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인민군 6군단 쿠데타 모의사건(1995년)
북한의 함경북도에 주둔하고 있던 6군단이 함경북도 청진을 사령부를 두고 함경북도 전체를 관활하고 있었으며 북한 공산당 중앙당에서도 변방에 있는 6군단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며 함경북도 청진 인민군 무력부 6군단 정치위원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다가 발각된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장성급을 포함한 인민군 간부 40명이나 처형당한 대형사건이며 당시 이 사건의 파장력이 실로 엄청났는데 함경북도 전체와 6군단 전체로 미쳤기 때문에 북한 내부의 군대 및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995년 6군단쿠데타에 대한 증거는 1999년에 워싱턴 타임즈 빌 거츠기자가 공개한 미국 행정부 극비문서에도 쿠데타시도가 있었다는 여러가지의 증거로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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