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킨 위대한 군사지휘관 4인

똥베이런 2016. 9. 28.
반응형

1592년에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명나라를 친다는 거짓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인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에 뛰어난 군사지휘력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위대한 조선의 군사지휘관 4인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개개인마다 생각이 틀릴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쟁의 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 

(소속 : 조선 수군)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독제독이며 해군지휘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7년전쟁 도중에 전라좌수사를 시작으로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을 수행했으며 일본의 본국 철수에 해상퇴로를 막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전사이후에는 조선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충무공, 선무1등공신, 덕풍부원군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또한 명나라 조정에서 명 수군제독(명나라 정1품)이라는 관직도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과 크고 작은 전투에서 42전 42승을 했으며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한산도 대첩이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대표적인 해상전투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섬나라라는 것을 파악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은 일본 본국에서 보내는 지원물자를 모두 차단하여 일본군을 궁지로 내몰게 만들었으며 일본의 지형과 전투 전술을 보았을 때 조선을 지킨 조선의 위대한 해군제독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조자룡 정기룡 장군 

(소속 : 조선 육군)


일명 조선의 조자룡이라고 불리는 정기룡 장군은 육지의 이순신이라는 별칭도 따라 다니는 조선 선조시대의 무관입니다. 1586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에 선조의 명령에 따라 이름을 기룡이라고 고쳤으며 1590년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신립의 휘하에 있었으며 그 다음 해 훈련원 봉사라는 직책을 엮임 하였다



정기룡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시기에 별장으로 승진하였는데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의 휘하에서 근무하였으며 거창전투에서는 일본군 500명을 격파하고 금산전투에서 정기룡의 직속상관인 조경을 구출한 전공이 있으며 일본군에게 함락 당한 상주성을 상주목사의 요청으로 상주성을 탈환하였으며 진주성 대첩 당시 김시민을 도와 진주성 부군에 소수병력을 이끌고 주둔하고 있다가 왜군에게 위협과 견제를 함으로써 진주성 방어대첩에 있어서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진주목사 충무공 김시민 장군 

(소속 : 조선 육군)


김시민 장군의 일화를 보면 상당히 남성적이며 매우 강한 천성적인 무관이었으며 자존심도 매우 강했다고 한다. 1591년에 진주판관에 임명되었으며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진주목사 이경을 대신해서 진주성을 수축하고 무기를 강화하였으며 대표적인 조선 의병장인 곽재우 등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여러차례 이겼으며 창원과 고성 등을 회복한 공을 인정받아 진주목사에 임명되었다.



1592년 10월에 진주성으로 쳐들어온 일본군을 진주성 방어전을 통해 막았는데 일본군의 제1차 진주성공격에 동원된 병사는 3만명이었으며 공격을 방어하는 조선군은 3,800명이었다고 하며 김시민 장군은 적의 탄환을 맞아 사경을 헤메다가 전사 하였다 진주목사 김시민이 사망 한 뒤 조선조정에서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제수했지만 교서가 당도한 것은 김시민이 사망한 뒤였다고 한다



조선군 총사령관 도원수 권율 장군 

(소속 : 조선육군)


조선 선조시대 당시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에 의해 이순신, 권율과 더불어 천거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먼저 수군에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라 같이 군복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류성룡 덕분에 만난 인연 덕에 전쟁 당시에도 서로 서신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역사에서는 도원수 권율보다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의 인식이 더 강한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행주대첩 당시에 행주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이 1만명 미만이었고 행주산성을 공격한 일본군이 3만명인데 일본군의 지휘장수가 우키타 히데이에와 이시다 미츠나리인데 우키타 히데이에는 당시 일본군의 총사령관과 같은 직책을 수행하였고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의 장수인데 아무리 통솔력이 병맛수준이라고 해도 1만명이 되지도 않는 군사로 일본에서 내노라하는 군사지휘관에 맞서서 3만의 일본군을 물리친것을 보았을 때 권율장군이 전략과 전술을 잘써서 이긴 행주산성 방어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랭킹월드 추천글 링크>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들

실제로 존재했던 조선의 천재 무기개발자 4인

 북한의 악행! 북한 5대 정치범수용소

탈북자들이 말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용대상들


이 글이 재미있고 유익하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아래에 있는 <공감> 버튼 한번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