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 했었던 위기 7가지
1950년 대부터 군비경쟁의 발달과 함께 종말을 불러올 미국과 소련사이의 전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 사건들 중 핵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시작점으로 생각 되는 사건들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
(1950. 6. 25~1953. 7. 27)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두 세력간의 전쟁이며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세력과 UN연합과 미국의 지원을 받던 자본주의 세력의 전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이 초강대국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거라고 예상하였으며 CBS뉴스의 빌 다운즈 기자는 1951년에 한국전쟁은 제3차세계대전의 시작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인천에서의 놀라운 상륙작전과 국제연합군과 함께 미군의 합동작전은 자본주의 진영의 한국에서의 승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아시아지역과 전세계를 둘러싼 주요 국제분쟁의 첫 전투일뿐이라고 발언하였다고 합니다. 빌 다운즈 기자는 1968년 ABC월드뉴스의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 보도에서도 이 주장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1962. 10. 15 ~ 28)
피그스 만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쿠바에 소련 핵 미사일을 배치한 데 따른 긴장은 제3차세계대전을 촉발시킬 수 있었던 핵전쟁에 가장 가까웠던 사건이 아니었나 합니다. 전쟁촉발 긴장은 커티스 르메이(미국 공군 대장)이 모든 정찰 비행을 보류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는데요. U-2 1기가 쿠바 상공에서 다른 1기가 시베리아에서 격추되면서 소련 잠수함이 폭뢰 공격을 당하자 핵 어뢰발사 직전까지 갔던 10월 27일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사건입니다.
욤키푸르 전쟁
(1973. 10. 6 ~ 25)
욤키푸르 전쟁은 제4차 중동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하던 미국과 아랍국가들을 지원하던 소련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미국과 소련의 함정들은 서로를 향해 발포할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미 해군 제독은 정찰을 통해 소련 함대가 미국의 함대를 공격할 가능성이 40%임을 관측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관측으로 인해 미 국방부 펜타곤은 DEFCON 레벨을 4에서 3으로 격상시켰으며 각 진영을 대표하는 두 초강대국은 전쟁 직전까지 갔으나 두 나라의 촉발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339호를 통해 해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감지 컴퓨터 화면에러
(1979. 11. 9)
소련의 총공격이 일어났다는 정보가 NORAD 화면에 나타나자 미국은 비상시 보복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련과의 핫라인인 "레드 텔레폰"을 사용하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소련의 발사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하기 전까지 NORAD는 컴퓨터 시스템이 화면 에러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NORAD에 있던 한 상원의원은 분위기가 완전한 패닉이었다고 묘사했다고 하는데요. 미국 회계감사원에서는 비슷한 실수를 막기 위해 시설 외적인 테스트시설 구축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소련 핵 무기 조기경보시스템 오류
(1983. 9. 26)
소련의 핵 무기 조기경보 시스템에 미국의 핵무기 기지에서의 미니트맨 ICBM발사를 나타내는 오류경고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 시스템이 단순히 오작동 했다는 것을 깨달은 소련 방공군 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반격을 막았으면서 3차세계대전을 막았다고 합니다.
NATO 에이블아처 훈련
(1983년 11월 2일 ~ 11일)
DEFCON1 핵 공격으로 끝나는 충돌 확대를 가정한 10일동안 NATO군은 에이블 아처 훈련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NATO군의 에이블 아처 훈련 기간 동안 소련 공산당 정치국과 소련군에서는 에이블 아처 훈련을 실제선제공격을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 대응으로 소련은 동독과 폴란드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의 핵 전력을 대기시키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소련의 공군 병력을 전진배치하는 등 합동으로 NATO군에 반격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NATO군의 에이블 아처훈련이 종료되면서 소련의 반격준비는 중지 되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로켓사건
(1995년 1월 25일)
노르웨이 로켓사건은 노르웨이와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발사된 블랙 브란트XII 관측 로켓의 레이더 신호가 러시아의 오레네고르스크 조기경보 레이더에서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혼동되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소환되었고 최초로 유일하게 체게트 핵가방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로켓이 러시아 영공으로 진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전투 준비태세와 반격을 신속히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로켓 과학자들이 실험 발사를 사전에 러시아 포함하여 30개국에 테스트 발사를 알렸으나 그 정보가 러시아 레이더에는 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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