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제1차 고당전쟁'에서 패배한 '이세민'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

똥베이런 201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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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사 상 명군의 표본이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은 당나라 건국 이후 주변국을 정벌한 뒤 사신을 보내지 않은 고구려를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침공했는데요. '제1차 고당전쟁'에서 패배한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벗어나 당나라로 살아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자신이 직접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후 수나라가 함락시키지 못한 '요동성'을 함락 시키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당 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안시성'이라는 곳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이에 '당 태종 이세민'은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해 토산을 쌓았고 매일 같이 군사를 움직여 성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안시성 주민들과 고구려 군사들은 철통같이 안시성을 방어했고 추운 겨울과 연개소문의 이간계로 인해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는데요.



'당 태종 이세민'은 남아있는 당나라 패잔병들을 이끌고 후퇴를 하는 과정에서 고구려군의 추격으로 인해 힘든 후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영토 깊숙히 들어갔기 때문에 후퇴 역시도 어려웠던 것인데요. 이러한 힘든 후퇴 과정에서 '당 태종 이세민'은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는 요동 초입 부분의 '요택'으로 후퇴를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요동 반도 초입부분의 '요택'은 늪지대로 중원(당나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합니다. 즉, '당 태종 이세민'은 요택이라는 곳을 빠져나가기 힘들 뿐 만아니라 고구려 기마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요택'을 선택했던 것인데요.


만약 '당 태종 이세민'이 요택이라는 곳을 통해 당나라로 돌아가야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실제 '고당서'에 의하면 '이세민'이 군대를 이끌고 '요택'으로 들어가자 고구려군이 추격을 멈추고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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