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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6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할 수 없는 이유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2번의 군사쿠데타로 인해 장기간 동안 군부가 독재를 하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수립되면서 군부독재는 완전히 끝이나게 되었는데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에 의해 장기간의 군부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되찾게 되었는데요. '6월항쟁'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통령 투표제'를 선언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대통령 선거는 국민투표제로 실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아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는데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밀리터리 2018. 3. 30.
소련에 의해 발각 된 북한 프룬제 군사대학 출신 장교 쿠데타 사건 프룬제 군사쿠데타 사건은 1992년에 소련의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 유학파 출신의 북한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시도한 사건입니다. 조선인민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되었던 1992년 4월 25일 사열식이 열릴 때 쿠데타 세력은 전차포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날려버리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련의 정보유출로 인하여 이 계획은 실패했고 프룬제 쿠데타사건은 소련 유학파 출신 북한군 장교들이 계획한 군사 쿠데타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2년 당시 소련도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체재였지만 고르바쵸프의 집권으로 인하여 자유도가 많이 상승했습니다. 또한 경제상황 자체도 북한보다 훨씬 좋았으며 중국과 소련의 개혁개방을 보면서 유학파 출신 장교들은 북한 역시 개혁개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북.. 밀리터리 2017. 12. 26.
일본 내부에서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앙 정부에서 국왕이 직접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시스템이 아닌 다이묘(총리)가 국가를 다스리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또한 현대 일본은 국왕이 있지만 총리를 두고 총리가 국가를 통치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에서 '쿠데타'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2차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극우세력이 일으킨 '궁성사건'이라고 합니다. 또한 한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차례에 걸친 군사 쿠데타로 인해 군사정권이 2번이나 들어서게 되었는데요. 실제 군사정권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 이들은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범국 재판 이후 5만 명의 비정규군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밀리터리 2017. 12. 17.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이 전투병력을 파병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4가지 베트남 전쟁은 한국과 연관이 많은 전쟁으로 당시 전투병력이 모자르게 된 미군은 주한미군 제7사단을 베트남으로 보냈습니다. 또한 곧 이어 주한민군 제2사단마저도 베트남으로 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빠져나간 전력에 공백이 생겨 벌어 질 북한의 침공이 두려웠던 박정희 정부는 미군측에 먼저 파병을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우리가 너네 대신 베트남에 병력을 보내줄께! 라고 제안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미국 정부도 이를 승낙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의 전투병력을 보내고 뒤이어 9사단(백마부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에 걸쳐 5만명의 병력에 달하는 한국 국군 장병들이 베트남 전.. 밀리터리 2017. 6. 6.
광해군의 몰락, 인조반정의 결과 4가지 안녕하세요. 조선 광해군 시절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인해 능양군은 왕에 즉위하였고 능양군을 인조라고 칭하는데요.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후 조선에서 일어난 결과 4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광해군의 몰락, 인조반정의 결과 4가지 정묘호란 인조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즉위한 이후 배금정책을 실행하여 훗날 청나라가 되는 후금의 신경을 건들게 됩니다. 광해군 시절에는 외교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별탈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후금의 3만 병력이 압록강을 지나 강화도를 함락시키면서 조선 역사상 치욕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괄의 난 이괄은 인조반정 당시 인조측 무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인조반정에 성공하고 1년 후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괄의 난에 참여했.. 밀리터리 2017.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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