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56 임진왜란으로 최대의 수혜를 입은 인물 3인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조선에 대규모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도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가문도 본국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도요토미 가문은 임진왜란 이후 가문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고 명나라 또한 임진왜란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멸망하긴 했습니다. 결국 임진왜란으로 인해 최대의 수혜자들은 3명으로 단축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누르하치 (청나라 초대황제)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나라는 조선에 대규모 원병을 파병하고 만주 일대에서는 여진족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수혜를 받은 인물은 여진족의 우두머리이자 청나라 초대황제인 누르하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가 후금과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명나라의 멸망 원인은 대규.. 밀리터리 2017. 7. 16. 더보기 ››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반격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 임진왜란은 1592년 (조선 선조 24년 임진년) 음력 4월 14일부터 1598년 (선조 31년 무술년) 음력 11월 19일까지 7년간 조선,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동북아시아의 국제전쟁입니다. 흔히 임진왜란은 조선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경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분야에서 한국사에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정권교체와 장기적으로 중국 대륙의 왕조교체까지 동북아시아 3개국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전쟁입니다. 왕세자 광해군 분조의 각 지방의 의병 봉기 촉구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14대 국왕이었던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일본군이 개성을 거쳐 평양까지 진격해오자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였고 일본군이 황해도로 북진해오자 선조는 또 다시 도망가버렸습니다. .. 밀리터리 2017. 7. 5. 더보기 ››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 10가지 최근에 재평가받고 있는 세계의 전쟁사 또는 인물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받고 있는 것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유럽의 중세시대 서유럽의 중세시대는 그리스, 로마 문명이 쇠락한 야만의 시대였으며 유럽인들은 르네상스가 오기 전까지 그냥 야만인이었다고 현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중세시대에 나름대로 문화가 발전하였고 라틴어와 라틴 문화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여성 인권은 그리스, 로마시대보다 더 진보하였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 중세 이후 시기보다도 원시종교와 공존이 이루어졌고 종교재판은 탄압보다는 계도의 의미가 컸다고 하는데요. 서유럽의 중세시대는 농업기술면에서 고대를 뛰어넘는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러한 점은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밀리터리 2017. 7. 4. 더보기 ›› 우리가 잘 모르는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의 이야기 5가지 고려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최영 장군이 사망 이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 건국기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최영 장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백전노장 최영 위화도 회군 당시 최영 장군은 개경에 남아있는 병력을 모아 위화도에서 회군한 고려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특히 70세의 백전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좌군통사 조민수의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데요. 수적으로 몰리자 최영 장군은 이성계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의 유언 최영 장군은 이성계로부터 고봉현이라는 곳에 유배를 가게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개경으로 후송되어 개경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은 죽기전에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최영 장군은.. 밀리터리 2017. 6. 15. 더보기 ››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이후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옹립하여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창왕을 폐위하고 자신이 조선을 건국하면서 역성혁명을 실행는데요. 조선 건국 당시 명분이 없었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무인들의 지지 위화도 회군 당시 대부분의 유능한 무인들은 요동정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좌도통사 조민수와 권력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좌도통사 조민수는 이성계에게 숙청당하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위화도 회군 이후 위화도 회군 자체가 반역과 같은 결정이었기 때문에 당시 무인세력들은 이성계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성계와 사대부의 연대 여말선초 당시 최영과 이성계가 권문세족들을 숙청함에 따라 신진사대부 세력.. 밀리터리 2017. 6. 4.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3 4 5 6 7 8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