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박정희8 베트남 전쟁이 한국에 끼친 영향 4가지 한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베트남 전쟁의 명칭은 월남전이며 현재까지도 국군에서 만든 자료에서 월남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베트남전쟁을 평가하기로는 더러운 전쟁(Dirty War) 또는 아편전쟁, 이라크전쟁과 더불어서 목적, 명분이 없는 전형이자 미국이 전투에서 이기고도 패배한 첫번째 전쟁이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외화벌이 한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보았고 참전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외화를 벌여들였습니다. 비록 베트남 전쟁은 패배한 전쟁이기는 하지만 당시 유신 정권은 새마을 운동을 앞세워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분명 유신 정권에서는 외화가 많이 필요했을텐데요. 한국군의 .. 밀리터리 2017. 6. 23. 더보기 ››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이 전투병력을 파병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4가지 베트남 전쟁은 한국과 연관이 많은 전쟁으로 당시 전투병력이 모자르게 된 미군은 주한미군 제7사단을 베트남으로 보냈습니다. 또한 곧 이어 주한민군 제2사단마저도 베트남으로 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빠져나간 전력에 공백이 생겨 벌어 질 북한의 침공이 두려웠던 박정희 정부는 미군측에 먼저 파병을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우리가 너네 대신 베트남에 병력을 보내줄께! 라고 제안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미국 정부도 이를 승낙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의 전투병력을 보내고 뒤이어 9사단(백마부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에 걸쳐 5만명의 병력에 달하는 한국 국군 장병들이 베트남 전.. 밀리터리 2017. 6. 6. 더보기 ›› 일제 해방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다 혹은 국방경비대다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국가정체성 탓에 광복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방부 스스로는 국군의 뿌리는 의병과 광복군에 두고 있다 사실 독립 이후 국방경비대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국군이 창건 되었을 때만해도 조선인 일본군 장교들이 대거 참여하여 미군식 교육을 받았지만 일본군식 스타일로 훈련시키고 체계를 완성했기에 실질적으로 국방부나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는 한국 독립 광복군으로 시초를 정식적으로 두고있다 일제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 대한제국 ~ 일제해방 초기 대표적인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는 기본적으로 구 일본군이 남기고 갔던 피복류와 총기류 등을 사용했었으며 194.. 밀리터리 2016. 10. 1.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