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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최대규모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똥베이런 201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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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6월 연합군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실시한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상륙작전이며 한국어로는 오버로드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넵튠 작전을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으며 실제로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Battle of Normandy, Invasion of Normandy, Normandy landings(Operation Neptune)으로 구분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D-day



미군과 영국군의 공수부대 투입


노르망디 D-day의 서막을 알린것은 연합군의 공수부대였으며 1944년 6월 6일 새벽에 미군 제82공수사단과 101공수사단, 영국군 제6공수사단은 해안포나 교량 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노르망디에 강하했는데 0시 15분에 본대에 착지지점을 표시할 선도병들이 투하되었고 뒤를 이어 새벽 2시에 본대가 강하한다 그리고 당시 노르망디에는 강한 바람과 대공포로 수송기가 제대로 된 지역에 병력을 투입시키지 못해 연합군의 병력들은 제대로 집결하지 못했고 강습용 글라이더 또한 많은 사고를 당했다



피의 오마하해변


"이 해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이다."


- 미군 제1보병사단 16연대장 조지 테일러 -


당시 오마하를 지키던 독일군 352사단은 동부전선에 투입 될 보병사단으로 창설되었다가 임시로 방어임무를 맡은 것이었으며 정예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군 지휘부는 오마바 해변을 서쪽부터 동쪽으로 총 10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병력을 상륙시켰는데 특히나 상륙 전에 병사들에게 제공한 아침식사가 파도가 심한 바다에서 심각한 멀미를 유도했고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엄청난 기관총 사례를 버티지 못하고 옆의 바다로 뛰어내린 병사들은 체력이 바닥이 났고 무거운 군장을 풀어야 다시 떠오를 수 있으므로 익사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엄청난 전사자를 낸 미군은 오마하 해변에서만 약 3,000명의 사상자(전사, 부상, 실종)을 내고 말았고 포기직전까지 몰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제16보병연대 연대장이었던 Geroge A. Taylor 대령이 선두로 돌격을 감행하면서 방어선을 돌파하였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에서는 유타 해변의 후방에 강하한 미군 101 공수사단 이지 중대가 본대의 원활한 상륙을 위해 독일군의 포 진지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푸앵트뒤오크(Pointe du Hoc)의 전투


상당한 병력이 상륙하는 동안 오마하 해변의 도그 그린에서는 225명의 미군 레인저 대대 소속 병사들이 절벽 위로 특수한 반격포를 쏘면서 로프를 이동하여 상륙정에 큰 위협이 되는 직사포와 곡사포들을 제거하기 위해 상륙했고 29개의 로프를 겨우 연결하였지만 20명 정도의 사상자를 내면서 독일군이 진짜 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가짜 포를 설치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 와중에도 미군은 포격에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의 부대가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가 푸앵트뒤오크였으며 조류에 상륙정이 밀려가면서 오마하에 도착해 버린것이다



영국군과 캐나다군의 해변점령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영국군은 골드 해변에 상륙하였고 캐나다군은 주노 해변으로 상륙을 했는데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상당히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캐나다군의 경우에는 상륙한지 15분만에 독일군의 저항을 돌파하여 해변을 점령했고 점령 후 우회기동하여 영국군이 고전하고 있는 골드 해변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독일군을 포위하면서 영국군 또한 골드 해변을 점령하였다



멀베리 항이라는 인공항구 가설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후 3일 뒤인 1944년 6월 9일에 멀베리(Mullberry)라는 조립식 인공항구를 노르망디 앞바다에 가설하였고 프랑스 회복에 있어서는 군수물자를 공급할 항구를 얼마나 빨리 점령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연합군의 연합전선에서 거의 유일한 항구였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에도 약 10개월 동안 약 250만명의 병력과 50만 대의 차량 그리고 400만톤의 물자를 하역시킴으로써 연합군 승리의 초석을 마련한다



연합군의 진격


상륙작전 시에는 고려하지 못한 노르망디의 특유의 지형이 연합군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는데 독일군이 노르망디의 지형을 이용하여 저격수나 대전차포를 매복 시켜놓았다가 한 두발 쏘고 도망가는 짓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6월 말과 7월 중순까지 연합군은 프랑스의 대부분을 수복하였으나 연합군의 사상자가 무려 12만 2,000명에 달했고 연합군의 주요 수뇌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결과


연합군은 노르망디 지역에 무려 2달 정도 주둔하고 있어야 했는데 2달동안이라는 시간동안 서부전선의 독일군의 정예병력이 지속적으로 패배하였고 프랑스 현지에 있던 서부전선의 잔존병력까지 섬멸하였으며 프랑스 해방까지 독일군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을 해보지 못하고 패배를 거듭하였으며 실제로 1944년 8월에 안트베르펜과 로렌 인근까지 진격한 연합군은 발터 모델의 완강한 방어로 인하여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주력병력이 없어질때까지 서부방벽에서 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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