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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동북아시아 3개국의 전후 상황

똥베이런 2016.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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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는 일본 본국의 소식에 의하여 비밀리에 일본군은 일본 본국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7년간의 전쟁도 종결이 되었으며 동북아시아 3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이 종결 된 후 조선, 명, 일본의 전후 사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진왜란 종결 이후 동북아시아 3개국의 전후 상황



조선 (Joseon Dynastry)


"조선의 역사는 명백하게 임진왜란 전과 후로 갈린다."


왜란이 일어난지 7년동안 조선은 한반도 전국을 다 합쳐서 막대한 임명피해와 물자피해 등 많은 피해를 보았으며 전쟁동안 일본군들이 전국 각지를 공격하여 조선 병사들을 몰살시키고 양민들도 학살하였으며 농사를 짓는 토지와 농촌 지역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의병이 봉기하였을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젊은이들의 피해가 컸으며 피난가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처녀와 부녀자들 또한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사실 조선군과 명나라 군에게도 전쟁 범죄 책임은 있는데 조선군 역시 종종 조선 백성들의 물자를 털어먹었고 그 중에서도 조직적으로 약탈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군 역시 마찬가지이며 조선의 민간인들이 적군 아군 할것 없이 피해를 상당하게 보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재도 대거 피해를 입었는데 류성룡의 징비록과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3개의 궁이 백성들의 폭동에 의해 방화로 없어졌으며 일본군 역시 한양을 점령하고 주둔하고 있을 당시 상당한 조선왕조의 문화제를 불 태우거나 파손시켰다



농업 및 산업 기반시설도 대거 파괴되었고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곡물수확 등이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로 대폭 줄어버렸고 가뭄과 호란 등 지속적인 외세침략으로 조선의 백성들은 상당히 힘든 세월들을 보내야만 했다 사실상으로 조선이 임진왜란의 경제규모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영조대왕 때 복구하였다고 볼 수 있고 대체적으로 이 때부터 조선민족에게 떄려잡자 풍신수길 즉 반왜, 척왜 성향 및 호국의식이 발달하게 되면서 조선 조정을 기준으로 전후 복구와 경제회생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명제국 (Ming Dynastry)


명나라의 경우에는 조선에 대군을 파병 이후로 쇠퇴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물론 조선에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했다고 해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여진족과의 전투와 내부에서의 전쟁으로 인하여 쇠락과 쇠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명나라의 멸망원인은 이자성의 난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만력제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명나라는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으니 딱히 조선에 대군을 파병해서 멸망한 것이라고 볼 순 없고 명나라가 멸망 한 후에는 청나라 왕조가 중국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도쿠가와 정권 / 에도 막부(Tokugawa Shougunate)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전부가 일본 본국으로 돌아갔고 일본 본국에서는 히데요시 사망으로 인한 권력전쟁이 시작 되었으니 그 전투가 바로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세키가하라 전쟁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수립하고 조선에 임진왜란은 모두 이미 죽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탓이며 자신은 오히려 토요토미 일족을 몰아내고 침략에도 나서지 않았다며 전후 조선과 외교 복원을 요청하였고 현대 시점으로 보면 매우 형식적이고 완전하지도 않았지만 전쟁 당시 일본군이 포로로 잡아온 조선 사람들을 어느정도는 돌려주는 사과 절차도 거쳤다 그리하여 1609년에 조선과 일본은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화친을 도모하였으며 양 국간의 통신사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조선과의 화친을 지속적으로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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