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장제스4 장제스는 어떻게 '고궁박물관'의 중국 유물을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 대만에 있는 '타이완 국립 고궁박물관'은 중국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장제스가 어떻게 중국 자금성에 있는 중국 유물들을 가져와 '타이완 고궁국립박물관'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 타이페이시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압도적인 숫자의 중국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타이페이 시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은 1965년 개관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요.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후 중국의 엄청난 유물을 타이완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1948년부터 장제스의 명령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1948년 장제스의 명령에 의해 중국 국민당은 중국 자금성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가치가 높은 유물을 타이완 섬 타이중 등지에 옮겼다고 합니다. 장제스는 국공.. 밀리터리 2018. 4. 11. 더보기 ›› 한국전쟁 당시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한국을 지원하지 못했던 이유 중국의 '제2차 국공내전'과 더불어 1950년 한반도에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동아시아 역사를 완전히 바꾼 대형사건입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당시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는 상해 임시정부와의 교류를 활발히하여 친분을 쌓았다고 하는데요.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했던 장제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병력을 지원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의 전쟁 승인을 받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제연합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북한은 침략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남한측을 구원하기 위해 병력을 파병하게 되는데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을 하게 된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통일을 앞두고 있었지.. 밀리터리 2018. 2. 3. 더보기 ›› 역사적으로 한국을 도운 '친한파' 인물 5명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한민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을 도운 '친한파' 인물에 가까운 인물 5명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저지른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캐나다인입니다. 또한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명은 '석호필'로 '제암리 학살사건'을 포함하여 수 많은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요.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한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 만력제는 명나라 13대 황제로써 임진왜란이 발.. 밀리터리 2018. 2. 2. 더보기 ›› 중국의 역사를 바꿔버린 2차 국공내전이 발생하게 된 이유 제2차 국공내전 당시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는 마오쩌둥 초상화가 아닌 장제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승승장구했던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나게 된 제2차 국공내전이 발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제2차 국공내전에서 중국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중국 대륙에 공산정권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는데요. 마오쩌둥은 중일전쟁 이후 한 차례 장제스와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만남은 2차 국공합작 이후 미국의 중재로 인해 만남을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이 휴전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돌아가자마자 이 협정은 종이 쪼가리.. 밀리터리 2017. 10. 3.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