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원균3 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을까? '원균'은 조선 선조 당시 활동했던 무인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에는 경상우도(경상북도) 수군을 책임지던 '경상우수사'였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자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재직하였는데요. 원균은 왜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졸장이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균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수군을 출동시켜 추가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차단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균은 일본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상도 방어선을 보고 수군을 해산시키게 이르는데요.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임진왜란 발발 초기 원균이 이끌던 '경상우수군'이 초기에 대처를 잘했다면 조선 전역이 폐허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원균이라는 지휘관이 당시.. 밀리터리 2017. 12. 7. 더보기 ›› 한민족 역사 상 가장 최악의 장군으로 평가받는 인물 한민족 역사 상 가장 최악의 장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은 임진왜란 발발 초기 경상우수사를 지냈던 원균입니다. 또한 원균은 이순신 장군과 대립했던 인물로 유명하기도 한데요. 무슨 이유 때문에 원균이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장군으로 평가받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92년 5월 23일 일본 열도를 통일한 히데요시의 명령 하에 일본군은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발발 첫 전투는 동래성 전투로 동래성은 일본군의 조총에 의해 힘 없이 무너졌고 결국 동래성은 일본군이 함락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당시 원균은 경상우도절도사의 직책을 역임하고 있었고 당시 경상우수군은 조선 수군 조직에서도 가장 많은 판옥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래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에 있는 선조를.. 밀리터리 2017. 7. 26. 더보기 ›› 일본에서 보는 조선군 장수에 대한 인식 한국에서도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군 장군들중에 그들의 대장인 풍신수길 이외 선봉장이자 외교를 담당했던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카) 딱 2명 뿐이며 당시 우리의 조상님들은 일본장수의 이름을 발음이 들리는데로 한자로 적었으며 그바람에 현재까지도 어르신들은 누군지 현재까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본측도 마찬가지인것이 일본에 징비록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본에서 아는 조선측 장수로는 해상보급로를 끊어버린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3명은 일본군에게 패전하거나 다시 말해 일본이 이긴 전투의 상대방 지휘관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 알려져 있는 조선측 장군들 진주목사 김시민 (진주성 방어전에서의 승리).. 밀리터리 2016. 9. 30.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