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한국전쟁 이후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

똥베이런 2016.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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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참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국토분단이라는 생채기 때문에 의외로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면까지도 그 동안 한국 학계에서는 논의하는 것에 입조심들 해 왔다. 그러나 언론의 다양성과 의견표명의 자유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상처만을 주었다고 인식되어 왔던 한국전쟁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고찰하는 연구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



현대식 전면전 경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전면전 경험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중국은 일본과의 중일전쟁 그리고 중국 내전인 국공내전이라는 실전 경험이 있고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라는 실전경험이 있는데 반해 조선은 2차대전 시기 일본 점령하에 있어 우익세력의 광복군이나 좌익세력의 의용군으로나 활동했지 별 전쟁 경험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전의 경험을 통해 국군은 적지 않은 전훈과 전술교리 체계를 얻을 수 있었고 또한 국내에서 실전 경험을 보유한 지휘관들이 국군 창립 멤버로 자리잡으면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실제로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손원일 제독이 대표적이며 손 제독과 한국전쟁 덕에 해군은 그 전과 비교과 안 될 만큼 급성장을 이루어 전쟁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북한에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대외관계 변화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도와주기 위해 세계 각 국에서 지원병을 파병보내 한국의 여러 우방국들이 생겨났으며 터키는 타흐신 야즈즈 소장이 이끄는 1개 사단 + 1개 여단의 부대를 파병하여 미국과 영국 이외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으며 전사자도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았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몽클라르 장군이 자신의 계급까지 스스로 강등시키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참전을 고집했으며 그 휘하 부하들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총검돌격을 불사하면서까지 매우 적극적으로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셀라시에 황제가 자신의 친위대를 보내면서까지 대한민국을 지원했고 그 외에도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나 여러나라 또는 부족 사람들이 남한을 돕겠다고 서로 발벗고 나섰다. 전쟁범죄로 인하여 군대를 사용할 수 없는 서독이나 이탈리아, 일본은 기뢰제거 중 자위대원이 순직하거나 의료 또는 물자를 지원해서라도 대한민국을 도와줬다. 스페인의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은 2차대전 이후 파시즘 성향으로 세계 정가의 개천민으로 추락한 스페인의 위상을 반공을 빌미로 올리기 위해 파병을 제안했지만 거부되었고 대만의 장개석 총통도 대규모 파병을 제의했지만 확전이 우려되어 거절당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이 전쟁 이후 단순한 혈맹국 이상으로 가까워졌으며 이런 양국간의 믿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문서화 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36,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냈으며 상당히 많은 전비를 써야 했지만 8.18 도끼만행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사건, 1993년 1차 북핵위기 같은 남북간 전쟁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였으며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실제 군사적 행동으로도 보여주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육군지원용의 호위항공모함이나 가진 최약체 제7함대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함대가 된 계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영토변화


한국전쟁 전후의 남한이 실효지배하는 영토 크기를 비교해보면 38도선이 그어졌던 때보다 약간이지만 더 넓어졌고 휴전선 길이가 훨씬 짧기 때문에 철책의 범위도 줄어들었다. 물론 개성특급시, 연안군, 옹진군 반도를 상실하면서 서해에서 북한의 입김이 강해졌으니 개성은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광역시에 해당하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도시규모상으로 보았을 때 남한측이 손해를 보았다고 볼수 있다. 개성은 그냥 도시가 아닌 고려시대 시절 한민족의 수도였던 곳이며 당시 대전광역시보다도 더 큰 도시였으나 이승만은 상징성 높은 도시인 개성을 잃는 것을 상당히 분통해하여 개성의 반환 없이는 휴전도 없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내비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북방 5도를 지켜내면서 최소한의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했고 반면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고성군, 인제군, 양구군, 화천군, 철원군 등 강원도 북단을 되물렸으니 전술적 가치도 높으면서도 전쟁 당시 가장 격렬한 공방이 었었고 현재까지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을 지켜내고 있다.



사회변화


농지개혁으로 인하여 지주들이 토지를 급속히 매각하면서 지주계급이 해체되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지가증권이 액면가의 40%~80%로 처분되면서 산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분산되어버렸다. 전쟁과 피난, 양대 진영간의 학살과 반목으로 오랜기간 뿌리내렸던 시골 공동체나 계급관계, 지주-소작인 관계가 붕괴되었으며 특히 양반-상민-천민의 계급의식은 일제강점기 내내 내부에서 면면히 내재되어 왔다가 한국전쟁을 통해 완전히 해체 되었다. 이 처럼 전근대적인 신분적 주종관계, 경제적 종속관계는 300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으로 완벽에 가깝게 분해되었으며 이는 라틴 아메리카처럼 지주들의 경제개발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상대적으로 균등한 소득과 부의 분배로 인해 유리한 초기 조건을 형성하여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능하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한국전쟁이 비록 하향평준화를 불러왔지만 실력주의 사회(Meritocratic Society)에 어느정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으로의 인적 자원 대이동


실제 해방 이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가면서 인민재판 등으로 즉결처분 받는일이 빈번히 일어났고 핍박받은 자본가나 지주, 상공인 계층은 탄압을 피해 전쟁통에 자신들의 생명과 사유재산을 보장받는 남한으로 많이 넘어왔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한 사람의 수가 최소 50만에서 최대 150만명은 될 것이라는 추측한다고 했다. 남한은 의도치 않았지만 전쟁을 통하여 이처럼 적지 않은 알짜배기 인력들을 흡수하면서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앞서나가고 경제를 효율적으로 부흥시킬 자원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에는 이들 실향민 및 북한의 지주, 자본가, 지식인 계층이 큰 기여를 했다.



전쟁특수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은 많게는 국민의 1/20이 전쟁피해를 입었고 당시 내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국부의 무려 1/4를 잃었으며 일제가 남긴 공업시설의 피해율은 50%를 상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격렬했던 1950년 대에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고 높은 출산율, 월남과 전쟁특수에 의해 남한의 인구와 국내총생산은 늘었다. 다만 인구가 폭팔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1953년 기준 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북한 공업기반 파괴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 UN연합군의 엄청난 폭격에 시달렸는데 미군이 주축인 UN군의 폭격으로 인한 38도선 이북지역의 궤멸적인 피해는 폭격의 역사 같은 외국 서적을 통해서나 겨우 알 수 있는 지경이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휴전된 후 평양에는 멀쩡한 건물이 2채 밖에 없었고 원산에는 함포사격까지 겹쳐서 남은 건물이 없었다는 말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미 공군은 전쟁이 시작된 그 주에 제공권을 확실히 장악하면서 부산으로 몰렸을 때에 이미 전략폭격 목표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미 공군은 계속 하늘을 날았으며 전선고착 이후에는 철도와 저수지에 대한 폭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쟁 이후 소련과 공산권 위성국가들은 남한에 필적할 만큼 북한에 대규모 지원을 펼쳤고 1960년도까지 남한이 연평균 5%성장에 머물러 있을 때 북한은 1960년도까지 연평균 20%를 성장하면서 대체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특히 70년대 초까지 북한 경제의 황금기로 남한에 비해 상당히 잘 살았다고 하며 70년 대에 비데를 호텔에 설치하고 컬러TV를 보급했지만 훗날 고난의 행군의 단초가 되는 주체농법은 7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물론 현재는 남한이 북한보다 훨 씬~~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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