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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망과 논란

똥베이런 2016.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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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라는 7년을 넘게 끌었던 전쟁과 충무공 이순신의 삶은 함께 끝났는데 이러한 극적인 타이밍으로 인하여 엄청나게 많은 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이순신 장군의 사망에 대해 어떠한 설에도 탄탄한 근거가 없으며 노량해전 이전에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보낸 서신에 의하면 동방에 대장별이 희미해가니 멀지 않아 공에게 화가 미치리다. 공은 어찌 모르리오 라는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이 내용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의 묘소 비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1795년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첫머리에 '중국 청산도에 있는 진린 도독의 비문에서 채록'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성명 : 이순신


생애 : 1545년 3월 8일 ~ 1598년 11월 19일


국적 : 조선


시호 : 충무



이순신 장군의 자살설 (선조의 면사첩 논란)


조선의 중종 자살설의 요소로 면사첩이 쓰이고 있는데 면사첩은 선조가 이순신에게 '너를 죽여야 하지만 당장 죽이지 않겠다'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선조가 자신의 명의로 면사첩을 내준 적이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 조선왕족실록에 공식적으로 선조가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추가로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 면사첩은 조선왕조의 제도가 아니었고 면사첩의 기록은 왕조실록에서 선조와 인조시기에 딱 19건 정도만 나오고 조선의 경국대전에도 없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도 적어놨듯이 면사첩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사실적으로 선조가 이순신에 대한 압박을 가했긴 하였지만 이순신은 선비로써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유교적 사상의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있어서 면사첩 논란은 탄탄한 근거는 없지만 이순신에 죽음에 있어서 선조의 경계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해상저격 논란


공식적으로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전투중에 해상 저격을 당했다면 대장선이 함대의 전열 맨 앞에서 지휘를 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사용한 조총의 실질적인 살상거리는 40m ~ 50m, 유효 타격거리가 70m ~ 80m 이하였는데 대장선에 있는 이순신을 정확하게 저격하기 위해서는 30m ~ 40m 거리에서 쏘아야 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류성룡의 징비록에서는 정확하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진린의 대장선을 구하려고 하다가 전사했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기록에 근거해서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생존설도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고 퍼져있었다고 하는데 그 근거로 이순신은 당시 조선왕이었던 선조와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위장하고 도주 후 은둔생활을 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근거도 없는 설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임진왜란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조선수군과 이순신 장군은 항상 부상의 위협에 놓여 있었는데 한산도 해전이나 부산포 해전에서도 끊임없이 대장선에서 부상자가 나왔다는 점에 근거하여 조선 수군은 적의 사거리 내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뜻하고 있고 전쟁의 막바지에 총탄을 맞아 전사했다는 것 때문에 여러가지 설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명나라의 유명수군도독 수여 시기 논란


유명 수군 도독이란 단어 자체가 명나라에서는 품계 정1품으로 이순신이 만약 명나라로 부터 도독의 직책을 수여 받았다면 명나라에서는 이순신과 선조는 동급으로 취급하였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명 도독직 수여 자체가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 조정에서 만든 조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반론으로 황제의 명을 조작하는 것은 실록에 기록할 정도로 이를 열거한 군주 혹은 이를 자기 멋대로 넣엇을 사관이 자기 기반을 부정하는 대역죄에 가까운 점이니 조작은 이루어질수가 없고 명나라 도독직 수여가 명나라 측에서 조선을 분열 시키기 위한 공작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에는 유교적 사상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는 정1품의 직책은 조선 국왕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을 의미함으로써 선조를 강력하게 도발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논란에 있어서는 조선의 역사서와 명나라 역사서를 뒤져 이순신에 관련된 기록을 전부 다 보면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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