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미국 본토를 공격하면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똥베이런 2016.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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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첫 일본 본토 공습은 1942년 4월 18일 둘리틀 특공대에 의해 감행되었습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은 일제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무리하게 감행된 작전입니다. 



커티스 르메이의 등장


1945년 1월 유럽 전선에서 중국의 제20폭격기사령부를 거쳐 일본 본토 폭격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몇 달만에 다시 제21폭격기사령관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미 육군항공대 소장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었는데요. 커티스 르메이는 부임 직후 기존의 일본 본토 폭격작전을 분석한 결과하고 고도의 정밀폭격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또한 커티스 르메이가 상부에 제안한 것은 대규모의 폭격기를 저고도로 투입시켜 도시에 네이팜탄을 도배해버리자는 것이었는데요. 즉, 커티스 르메이의 요구는 말 그대로 일본도쿄라는 도시를 지구 상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일본군은 야간 방공전 능력은 형편이 없었고 그나마 있는 방공무기도 고공으로 조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저공 목표를 제대로 타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미 육군항공대는 첫 대공습을 야간에 실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미 육군항공대는 도쿄 대공습을 시작했고 10일 만에 일본의 주요도시 4개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수준의 처참한 보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3월 9~10일 도쿄 : 279기 투입, 사망자 8~10만, 건물 267,000여채 파괴, 도시면적 41 축소


1945년 3월 11일 나고야 : 310기 투입, 도시면적 5.3 축소


1945년 3월 13~14일 오사카 : 274기 투입, 도시면적 21㎢ 축소, 사망자 4,000여명, 행방불명자 500여명


1945년 3월 16~17일 고베 : 331기 투입, 도시면적 18㎢ 축소 사망자 8,000여명, 이재민 650,000만 여명


1945년 3월 18~19일 나고야 2차 : 도시면적 7.6㎢ 축소 



미국 공군 주력부대 미군 제8공군의 태평양 전선 재 배치


유럽 전역에서 폭격 임무를 담당하던 미 제8공군은 독일의 항복 직후 태평양 전선에 재배치되었다고 합니다. 미 제8공군은 1945년 7월 16일부터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을 가세했는데요. 미 제8공군은 독일을 상대하던 미군의 주력부대가 태평양으로 재배치되는 첫 단계였다고 합니다. 당시 오키나와에 배치된 제8공군은 주로 일본 큐슈 일대의 상공을 지배하면서 소규모 폭격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은 몰락 작전을 전, 후로 B-17 및 B-24 폭격기를 대대적으로 투입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조기 항복하면서 약 1달 간의 짧은 태평양 전쟁 참전을 끝내고 미국으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미 육군 항공대의 본격적인 일본 폭격 가세


P-51로 대표되는 장거리 전투기가 배치되면서 일본과 가까운 도서지역들이 미군에게 점령당하게 되면서 미 육군항공대 전투기들도 일본 폭격에 가세하기 시작했는데 본래 이들의 임무는 B-29의 호위였으나 1945년 5월이 지나면서 폭격기들에 도전 할 일본 전투기가 존재하지 않아 로켓발사기를 설치하여 소규모 공습에 참가하게 된다 공군 전투기들은 주로 일본군 소규모 비행장과, 주요 공장들, 철도 역 등을 타켓으로 삼아 폭격을 했으며 가끔씩 움직이는 연안 수송선이나 기관차들을 우선으로 폭격하였다 한편으로 미 육군과는 별개로 미 해군 항모기동부대도 일본 연안까지 진출하였는데 항모 함재기들이 도호쿠 일대를 폭격을 시작하며 7월 15일에는 훗카이도를 공습함으로써 일본 동해안을 따라 움직이며 보름동안 일본의 주요 항구도시를 타격했다



미 해군 전함부대의 일본 본토 포격 투입


미 해군 항공모함이 일본 해상을 돌며 주요 항구도시에 공습을 가하는 동안 미 해군의 전함부대가 일본 본토 폭격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미군 군부가 미 해군을 일본 본토 폭격에 투입시킨 이유는 미 해군의 전함부대의 지상 화력이 비행기에 비해 월등하고 파괴력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며 7월 14일부터 8월 7일까지 아이오와급 3척과 고속전함 10척을 포격하여 일본군 항공대는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16인치 포탄에 얻어맞은 공장지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본 본토의 피해 및 일왕의 항복선언


미국 군부의 필리핀 탈환 이후에는 일본의 패배가 기정사실이었으나 일본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은 2차세계대전의 종전을 최소 1년 이상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점령지와 본토가 박살이 나자 최후의 발악에 나섰지만 미국의 대규모 일본 본토 폭격으로 산업시설을 모두 날려버렸고 산업시설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 다수가 죽거나 부상당하였으며 생존자들도 겁에 질려 시골로 피난길에 떠나버렸다 폭격받은 주요 도시의 일본시민들은 이 전쟁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가 없다라는 걸 처절히 깨달았고 결국 일제는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으로 패망하게 되었으며 당시 일본의 일반 국민들이나 군부는 큰 반발 없이 항복을 받아들인 것도 계속된 미 공군의 전략폭격에 따른 패배감에 반발없이 받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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