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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탄금대에서 패배한 이유 6가지

똥베이런 2017.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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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 초기 조선의 정규군은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조선에 침략한 왜군을 막고자했습니다. 하지만 왜군의 막강한 조총부대에 의해 신립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정규군은 전멸 당하게 되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정규군이 탄금대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면전 선택


임진왜란 발발 초기 신립 장군은 상주라는 지역을 포기하고 기병들이 싸우기 좋은 탄금대라는 평야일대를 선택했습니다. 왜군은 당시 최신식 무기인 조총을 무장하고 있었으며 장거리 공격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마대가 접근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지휘관의 선택으로 전투지역을 평야로 선택하는 바람에 왜군의 조총부대에 의해 8,000명의 조선군은 전멸 당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장군이라는 오만함


조선왕조실록과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신립은 북방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많은 승리를 거둔 장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징비록에서는 신립은 잔인하고 포악하여 신립의 지휘를 따르는 자들은 많았으나 내부적으로 신립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즉, 탄금대 전투 당시 조선군의 지휘체계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전략적 무능


신립은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이순신과는 다르게 전략을 사용할 줄 몰랐던 장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북방에서 포위당한 조선군을 기마 10기를 이끌고 구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하여 징비록 등의 기록을 확인하면 신립은 전략적으로 완전히 무능한 장수하다는 것과 돌격형 지휘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


조선 조정의 명에 따라 신립은 이일을 구원하러 충주로 출정하였으나 상주에서의 전투를 포기하고 탄금대를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립 장군은 북방 민족들과 전투를 벌이던 평야의 전투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결국 탄금대에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상대로 전멸을 당하게 된 것이죠.



조총의 위력 무시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서애 류성룡이 선조에게 말하길 "조선도 조총을 유입시켜 조총병을 육성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립은 선조에게 조총의 명중률을 단점으로 지적하며 조총병 육성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돌격형 장군


신립 장군은 북방 이민족들과의 전투만 벌였던 장수로 대체적으로 평야일대에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돌격형에 가까운 장군이었습니다. 때문에 상주 일대의 산세를 이용한 전투가 아닌 탄금대라는 평야에서 전투를 진행했습니다. 신립 장군은 북방에서 오래 근무한 것 때문에 시대적으로 많이 뒤쳐졌던 장군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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